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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사람 즉, 자신이 가진 신체적 ·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일상 생활 또는 사회 생활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복지를 '장애인 복지' 라고 한다. 즉 장애인이 가진 장애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돕거나, 그 장애로 인해 겪는 생활상의 어려움을 돕는 사회적 차원의 노력을 장애인 복지라고 한다. 장애인 복지는 장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전에 있었던 미사의 여러 거행 형태 중 하나. 주례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부제와 서간을 읽는 차부제 등의 도움을 받아 미사를 거행한다. 그리고 장엄 미사는 보통 주례자와 교우들 및 성가대가 자신의 고유한 부분을 노래하는 창미사(missacantata)로 거행되었다. 주교 등 고위 성직자가 거행하는 주교 미사(missa po

서울대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읍서리 116 소재. 1898년 7월 청계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가 1950년 12월에 폐쇄되었다. 창설 당시 명칭은 두섭(道習)이었으며, 관할 구역은 장연 · 문화군 전역과 은율 · 승화 · 해주군 일부 지역으로 공소는 13개소. 〔교 세〕 1898년 489명, 1916년 1,243명,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경기도 수원 걸매서 아들 장팔보와 함께 살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나 1868년에 수원 고을 포교에게 장팔보와 더불어 붙잡혀 수원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함께 순교하였다. (→장팔보) ※ 참고문헌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편찬실〕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 233-53번지 소재. 1968년 10월 18일 미아동(彌阿洞,현 길음동) 본당과 이문동(里門洞) 본당에서 분리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관할 구역은 장위1 · 2 · 3동 전 지역과 상월곡동 일부 지역. 〔교 세〕 1971년 1,400명, 1974년 2,535명, 1978년 3,222명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야고보. 회장. 그는 전라도 고산(高山) 다리실(현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살면서 회장을 지냈다. 1868년 7월 28일 다리실에서 문 회장, 이 요한, 김치선, 김영문(요셉) 등과 함께 여산 고을 포교에게 붙잡혀 여산 읍내로 끌려가 옥에 갇혔으며 그해 11월 15일 여산 옥에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순교할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회장. 그는 본래 송도 시접골 사람으로 기(旗)를 들고 다니던 졸병인 기관(旗官)을 지냈다. 후에 송도 열매로 가서 살았으며 거기서 천주교를 배워 세례를 받아 신앙 생활을 하면서 열매 회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마을에서 살다가 1868년 5월에 붙잡혀 서울에서 순교한 장복일은 그의 장조카이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
주교. 제3대 춘천교구장. 세례명은 십자가의 요한. 1933년 11월 20일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서 장면(張勉,세례자 요한)과 김옥윤(金玉允, 마리아)의 5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출생하였다. 1946년 9월 경기중학교에 입학하였다가 6 · 25 전쟁으로 도미하여 1952년 6월 미국 펜실바니아 주 버나드 스쿨을 마치고, 1956년 6월 일리노이 주 메리놀

대주교. 한국인 최초의 교황 대사. 세례명은 바오로. 1949년 10월 30일 충북 청주에서 장시영(요셉)과 임정환(데레사)의 2남 중 막내로 출생하여 청주중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3월 성신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68년 3월 대건신학대학(현 광주 가톨릭대학교)에 진학하여 1976년 12월 대건신학대학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12월 17일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필로메나. 그녀는 왕십리에서 살았으며 7~8세 때부터 부모에게 천주교를 배웠다. 천주경 · 성모경 · 조만과(早晚課)를 읽어 익혔으며 푸르티에(Pourthie, 申妖案)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병인박해로 인해 체포되어 1868년 5월 2일 포도청에서 신문을 받았다. 이때 자신의 부모에게 천주교를 배운 사정과 푸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그는 충청도 면천 고을에서 살다가 병인박해로 인해 1868년 5월 체포되어 면천으로 끌려갔다. 이때 큰 사촌과 작은 사촌도 함께 붙잡혀 갔다. 큰 사촌은 면천에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고 그와 작은 사촌은 서울로 압송되어 함께 서울에서 순교하였다. 순교할 당시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그보다 앞서 그의 아들이 1
중국 도가(道家) 초기의 사상가. 본명은 장주(莊周). 도가의 시조인 노자(老子)의 사상을 계승한 장자의 철학은 '무위자연' (無爲自然)으로 대표된다. 〔생 애〕 장자의 생몰연대에 대한 정설은 없다. 다만,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 ~85?)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양혜왕(梁惠王) ·제선왕(齊宣王)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고 한다. 또한 일찍이 몽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그는 전라도 진산 사람으로 연산 동면 오리울로 이사하여 살다가 1880년 4월에 서울 포교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포도청에서 순교하였다. 순교 당시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 참고문헌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편찬실〕
수녀. 세례명은 마리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초대 수련장. 〔생 애〕 1906년 10월 25일 경기도 인천 화천동에서 인천 해관(海關)의 관리를 지낸 장기빈(張箕彬, 레오)과 황 루치아의 3남 4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장정온은 초등학교, 중학교 및 고등학교 과정 을 숙명학원(淑明學院)에서 이수한 뒤, 1922년 5월 언니 장정혜(張貞慧, 구네군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요셉. 회장. 그의 이름은 장낙소(張樂韶)로도 나온다. 경기도 수원 느지지(현 경기도 화성군 양감면 요당리) 태생(또는 수원 담안 태생)으로 1826년(또는 1827)에 세례를 받고 거의 모든 집안 식구를 개종시켰다. 그는 학식이 있고 슬기롭고 보기 드문 신심을 가진 신자였기 때문에 모방(Maubant, 羅) 신부가 입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그는 본래 충청도 연풍 사람으로 제천 배론에 가서 살며 푸르티에(Pourthie, 申妖案) 신부의 하인 노릇을 하다가 병인박해가 발생하여 1869년 5월 충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충주 읍내로 끌려갔다. 서양 신부의 하인 역할을 한 전력때문에 영장에게 불려가 신문을 받을 때 다른 신자들보다 훨씬 더 가혹한 형벌을 받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요셉. 그러나자료에 따라 사도 요한 또는 요한으로도 나온다. 김 안나의 남편인 그는 본래 서울 사동(社洞) 태생으로 33세 때처음으로 정의배(丁義培, 마르코)에게 천주교를 배워 세례를 받았으며 또한 정의배의 주선으로 베르뇌(Bermux,張敬一) 주교에게 고해성사를 한 차례 받았다. 뒤에 뚝섬으로 가서 살다가 다시 남문
평양의 선교 구역 장충동에 건립된 천주교 성당. 1988년 10월 9일에 설립되었으며, 신자는 1991년 3월 말까지 1,258명이었으며 현재 3,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2003년 현재까지 상주하는 신부는 없다. 〔설립 및 활동〕 북한 지역의 천주교 활동은 한국 전쟁과 이후 북한 정권의 억압적인 종교 정책으로 인해 극심한 쇠퇴기를 겪었다. 조선 불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