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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동 본당德壽洞本堂3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포항시 북구 덕수동 41-1 소재. 1977년 12월 포항(현 죽도)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로사리오의 성모. 관할 구역은 포항시 북구 덕수동, 덕산동, 대신동, 대흥동, 동빈동, 학산동, 신흥동, 우현동, 여천동, 중앙동, 두호동, 창포동, 장성동, 환호동, 여남동, 용흥1동과 영일군의 흥해읍, 청하면, 신광면,

덕수동 본당
덕신 본당德新本堂3

부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울산군 온산면 덕신리 307-9 소재. 1990년 2월 1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천사들의 모후. 관할 구역은 온양면 · 온산면 전 지역이며 관할 공소로는 남창이 있다. 〔교 세〕 1990년 310명, 1992년 741명, 1994년 1,087명. 〔역대 신부〕 초대 노경삼(魯景三) 다니엘(1990. 2~12), 2대 손덕만(孫德

덕신 본당
덕원 면속구德源免屬區3

함경남도의 원산시, 안변군, 덕원군, 고원군, 문천군 등을 관할 구역으로 하던 면속 대수도원구(abbatia nullius, 또는 territorialis) 1940년 1월 13일, 기존의 원산 대목구(元山代牧區)가 함흥대목구(咸興代牧區)와 덕원 면속구로 분리됨으로써 설정되었으며, 1949년 공산당에 의해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체포되면서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덕원 면속구
덕원 본당德源本堂3

덕원 면속구 소속 본당. 1927년에 함경남도 덕원군 북성면 어운리(北城面 於雲里)의 베네딕도 수도원 안에 설립되었다가 1949년에 폐쇄된 침묵의 본당. 주보는 성베네딕도. 설립 당시 원산 대목구의 소속이었으나 1940년 1월 12일에 원산 대목구가 덕원 수도원을 중심으로한 덕원 면속구와 함흥 대목구로 분리 개칭되면서부터 덕원 면속구 소속이 되었다. 관할

덕원 본당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德源 聖 - 修道院3

한국에 진출한 독일의 '상트 오틸리엔의 베네딕도 수도회' (Congregation of St. Ottillien O.S.B.)가 1927년 함경남도 덕원군 북성면 어운리(北城面 於雲里)에 건립한 대수도원(abbatia). 주보는 성 베네딕도. 1920년 말 서울 백동(柏洞, 현 惠化洞)에 건립된 수도원을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1949년 5월 공산당의 탄압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
덕원 신학교德源神學校3

덕원 면속구 소속이던 교구 신학교. 주보는 성 빌리브로르도(Willibrordous). 1921년 11월 서울 백동(柏洞, 현 惠化洞)의 베네딕도 수도원 구내에 설립된 소신학교로 시작되었고, 1927년 12월에 함경남도 덕원군 북성면 어운리(北城面 於雲里)로 이전 개교하였다가 1949년 5월 공산당의 탄압으로 폐쇄되었다. 1929년 대신학교가 병설되었고,

덕원 신학교
덕정리 본당德亭里本堂3

1930년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 덕정리에 창설된 의정부 본당의 전신. 주보는 하자 없으신 성모 성심. 〔역대신부〕 초대 피숑(Léon Pichon, 宋世興) 레오(1930~1945), 임시 윤형중(尹亨重) 마태오(1945), 2대 김피득(金彼得) 베드로(1945~1946), 개성 본당의 공소로 출발하여 1930년 피송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본당으

덕진 본당德津本堂3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262-7 소재. 1964년 6월 15일 중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베드로 가니시오. 관할 지역은 금암동 일부 지역과 덕진동 1 · 2가, 팔복동 1~4가 지역이다. 〔교 세〕 1971년 1,489명, 1980년 2,255명, 1988년 3,274명, 1993년 3,955명. 〔역대

덕진 본당
덕행 (⇨ 덕)德行3
던지실 본당- 本堂3

수원교구 소속 본당. 안성군 금광면 개산리 168-1 소재. 1992년 2월 13일 구포동 본당 던지실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평화의 모후. 관할 구역은 11개 공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즉 상중리, 장죽리, 선바위, 원오, 외개산, 현수리, 내개산, 돌우, 내동, 구송동, 농촌리이다. 〔공소 시대〕 던지실 본당의 모체는 안성군 금광면 오산리

던지실 본당
데니, 오웬 니켈슨 (1838 ~ 1900)3

고종(高宗)의 법률 외교 고문. 한국명은 덕니(德尼) 조선에서의 공식적인 직함은 가선대부 협판 내무부사 겸 외아문 장교사당상(嘉善大夫協辦內務府事兼外衙門掌交司堂上)으로서 묄렌도르프(Möllendorf)의 후임자였다. 미국 오하이오 주의 몰간(Morgan) 출신으로, 1838년 9월 4일 크리스챤(Christian)과 엘리자(Eliza) 사이에서 태어난 데니는

데니, 오웬 니켈슨 (1838 ~ 1900)
데니플레, 하인리히 조이제 Denifle, Heinrich Seuse(1846~1905)3

독일 교회사가.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 신부이며 중세의 문서 소개와 주역(註譯)에 공헌하였다. 세례명은 요셉. 1846년 1월 16일 알프스 산악 지대인 티롤(Tirol)에서 교사이자 오르간 연주자인 아버지 요한 데니플레와 어머니 안나에게서 출생하여, 학생 시절 그라츠(Graz)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들어가기로 결심하였다. 1866년 사제로 서품되고, 그

데니플레, 하인리히 조이제 Denifle, Heinrich Seuse(1846~1905)
데레사 여자중고등학교 - 女子中高等學校3

1954년 5월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를 주보 성인으로 설립된 부산교구 유지 재단 소속의 여자 사립 중등 교육 기관으로, 부산시 남구 범일1동 1375번지에 소재. 교훈은 데레사 성녀의 좌우명인 '겸손 · 순박 · 사랑' 이며, 성녀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가톨릭적 여성관을 학생들에게 심어 주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데레사 여자

데레사 여자중고등학교 - 女子中高等學校
데레사, 리지외의 (1873~1897)3

성녀. 가르멜회의 수녀. 포교 사업의 수호자로 축일은 10월 1일. 본명은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Marie Françoise Thérèse Martin)이며, 소화(小花) 데레사라고도 부른다. 〔생 애〕 아기 예수와 성안(聖顔)의 성녀 데레사(Saint Thérèse de l’enfant-Jésus et de la sainte face는 1873년

데레사, 리지외의 (1873~1897)
데레사, 아빌라의 (1515~1582)3

성녀. 가르멜 수도원 개혁가. 신비가. 교회 학자. 축일은 10월 15일. 수도명은 예수의 데레사(Teresa de Jesus), 본명은 데레사 데 세뻬다 이 아우마다(Teresa de Cepeda y Ahumada). 1515년 3월 28일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9남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때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녀의 집안은 착하고 힘있는 가톨

데레사, 아빌라의 (1515~1582)
데레사, 캘커타의 Teresa, Mother of Calcutta(1910~1997)3

유고슬라비아 태생의 인도 수녀. 사랑의 선교회 창설자. 본래 이름은 아네스 곤히아 보약스히야(Agnes Gonxha Bojaxhiu). 캘커타에서 시작된 그녀의 활동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인도에서는 통상 “마더”(Mother)라고 불려진다. 1910년 8월 27일 유고슬라비아의 스코프예(Skopje)에서 알바니아계 부모에게서 태어나 국립 국민학교 재

데레사, 캘커타의 Teresa, Mother of Calcutta(1910~1997)
데르베3

사도 바오로가 제1 ~2차 전도 여행 때 전도한 곳(사도14, 20-21 ; 16, 1). 오랫동안 그 위치가 미상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데르베를 명기한 비문(碑文) 두 개가 발견됨으로써, 카라만(Karaman) 읍내에서 동북쪽으로 23km 떨어진 케르티 회육(Kerti Hoyük)임이 확실시되었다. 1957년 케르티 회육 근처 아쉬란(Asiran

데미우르고스3

그리스어 데모스(δῆμος, 군중)와 헤르곤(ἔργον, 일)의 합성어로 '제조인' , '공작인' 을 뜻하는 일반 단어였던 데미우르고스를 플라톤이 세상의 '창조자' 라는 개념으로 철학에 처음으로 도입하여 "우주의 창조주이며 아버지" (Timaios 28)라고 했다. 그러나 물질 세계의 창조자 데미우르고스와 이데아 세계의 '선의 이데아' 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데미우르고스
데보시오 모데르나 (⇨ 새 신심 운동)3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편지- A- 便紙3

신약성서에 바오로 이름으로 쓰여진 편지 13편 중 데살로니카 공동체에 보낸 편지. 〔데살로니카 교회 설립〕 바오로가 전도 여행을 다닐 무렵 데살로니카는 로마 제국 마케도니아 속주(오늘날의 그리스 북부 지역)의 수도로서 20만 인구를 가진 중요한 항구 도시였다. 바오로는 제2차 전도 여행(50~52경) 때 실라와 디모테오와 함께 그곳에 공동체를 세웠다(사도1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