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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규 (1886~?)鄭南奎10

사회 사업가. 세례명은 세례자 요한. 1886년 5월 14일 서울 옥인동에서 정창인(鄭昌寅, 요셉)과 최 바르바라 사이의 3남 2녀 중 2남으로 출생하여 1904년 3월 명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1899년 9월 일본인 경영의 경성 학당(京城學堂) 한문과에 입학하여 1900년 3월에 마치고, 4월부터 경성학당 보통과에 진학하여 1901년 6월까지 수학하

정남규 (1886~?)
정당 방위 (⇨ 이중 결과의 법칙)正當防衛10
정당한 전쟁 (⇨ 전쟁)正當 — 戰爭10
정덕구 (?~1867)10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야고보. 일명덕오. 용인 더우골에서 태어나 용인 삼배일 점촌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발발하자 11월 26일(음 10월 20일) 광주(廣州) 포교 세 패가 몰려와 정덕구의 삼촌인 정여삼(바오로)을 비롯한 전 식구와 예비 교우였던 이화실을 체포하여 이들 집의 방에 가두었다. 이들은 심한 매질을 당하며

정덕수(?~1871)10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충청도 신창(新昌) 남방재 사람으로 같은 마을에 사는 김순일(요한) · 김 서방과 함께 1871년 4월 20일 서울의 포졸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끌려갔다. 포도청에서 심문을 받을 때 김 서방은 배교하고 석방되어 나왔으나, 정덕수와 김순일은 절대로 배교할 수 없다고 말하며 신앙을 굳게 지켰다. 이로

정도현 (1817~1871)丁 ㅡ10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베네딕도로도나오고 멜제리아로도 나온다. 《병인 치명사적》에 나오는 정도연과 같은 사람으로 판단된다. 그는 본래 광주(廣州) 마재(馬峴)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으로 천주교를 배워 영세를 하고 세례명도 지었다. 뒤에 그는 넙실로 이사하여 살다가 박해를 피하여 이천(利川) 소리울로 가서 살았다. 그러던 중 1871년 3월 말

정두원 (1581~?)鄭斗源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정숙(丁叔), 호는 호정(壺亭) · 풍악산인(楓嶽山人), 시호는 민충(敏忠). 1612년 생원이 되고 161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23년 성천부사(成川府使)가 된 후 인조를 도와 반청 숭명(反淸崇明) 정책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1624년 관향사(管餉使)로 명나라 장군 모문룡(毛文龍)에게 군량을

정릉동 본당貞陵洞本堂10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성북구 정릉2동 677-1소재. 1968년 10월 12일에 미아리(彌阿里, 현 길음동)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삼위 일체. 관할구역은 정릉2동, 정릉3동. 〔교세〕 1969년 1,118명,1974년 2,916명, 1980년 4,094명, 1986년 6,234명,1991년 6,486명, 1996년 5,522명, 2

정릉동 본당
정명조 (1935~ )鄭明祚10

주교. 제3대 부산교구장. 초대 군종교구장.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1935년 5월 25일 경남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에서 정연수(요셉)와 박금악(모니카)의 4남 3녀 중다섯 째로 출생하여 1953년 세례를 받았으며, 1956년 3월 거제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신대학에 진학, 1962년 12월 22일 부산 중앙 본당에서 최재선(요한)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

정문호 (1801~1866)鄭 ㅡ10

성인.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바르톨로메오. 축일은 9월 20일. 일명 기식(基植). 충청도 임천(林川, 현 충남 부여군 충화면)에서 양반으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과거에 합격하여 고을 수령으로 지내던 정문호는 천주교를 믿게 된 후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는 박해가 일어나자 고향을 떠나 여러 지방을 유랑하며 살

정문호 (1801~1866)
정미반회 사건丁未泮會事件10

정미년(1787) 천주교 신자들이 반촌(泮村)에서 교회서적을 강습하다가 발각되어 반대파의 척사 운동(斥邪運動)을 조장하고 기호 남인의 분열을 가속화한 사건. 반회 사건' 이라고 줄여 말하기도 한다. 반촌은 성균관이 위치해 있던 마을. 1784년의 한국 천주교회 창설과 이듬해에 일어난 명례방 사건(明禮坊事件)으로 조선의 일부 지식인과 위정자들 안에서는 척사론

정복혜 (?~1801)鄭福惠10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칸디다. 양인(良人) 출신으로 동대문 밖 전농동(典農洞)에서 태어나 살다가 산림동(山林洞)으로 출가하였으며, 1790년에 이합규(李鴿逵)를 만나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칸디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후 그녀는 교회 일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친정 오빠 정명복(鄭命福)과 아들 윤석춘(尹碩春) 등에게 전도하였고, 양반

정복혜 (?~1801)
정봉 본당丁峰本堂10

침묵의 교회. 황해도 신계군 고면 정봉리에 위치한 본당. 1928년 5월에 설립되었다가 1950년 7월에 폐쇄되었다. 주보는 성 마리아. 〔교 세〕 1937년 689명, 1944년 738명. 〔역대 신부〕 초대 이보환(李普煥) 요한(1928.5~1933. 5), 2대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1933.5~1935.6), 3대 이순성(李順成) 안드레아(1

정봉 본당
정사박해丁巳迫害10

1797년(정조 21) 충청도 남부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박해. 조정의 공식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충청도 관찰사의 명에 의해 발생하였다. 이 박해 때 충청도에서는 100명 이상의 신자들이 체포되거나 순교하였다고 하나, 현재 순교 행적을 알 수 있는 순교자는 그리 많지 않다. 조정에서는 1795년 5월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

정산필 (?~1799)鄭山弼10

정사박해(丁巳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충청도 덕산(德山)의 양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천주교를 믿기 전까지는 성격이 격렬하고 힘이 비상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와 가까이하기를 꺼려하였다. 그가 언제, 어떤 계기로 천주교를 믿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덕산 지역에 천주교가 알려진 후 입교하여, 1795년

정산필 (?~1799)
정서情緒10

전반적인 감정의 상태와 그에 수반되는 생리적 변화. 주관적 경험, 표출된 행동, 신경 화학적 활동이 종합된 극도로 복잡한 현상. 이 단어의 의미는 학자들 또는 시대에 따라 변하였고, 현재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가 되었다. 그러나 정서가 한 개인의 환경 또는 상황에 대한 인식, 신체적 반응, 그리고 접근 혹은 회피 행동을 다양하게 수반한다는 데 의견

정선 본당旌善本堂10

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봉양 3리 327번지 소재. 1957년 4월 12일 영월(寧越)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골룸바노. 관할 구역은 정선군 정선읍, 동면, 북평면, 북면, 임계면, 명주군 왕산면 고단리 일부 지역. 〔교 세〕 1963년 633명, 1970년 1,131명, 1975년 1,346명, 1980년 1,275

정선 본당
정설正說10

올바른 또는 정통 신앙, 올바른 하느님 찬미라는 의미의 용어. '정통적' 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형용사 '오르토스 (Όρθός)가 앞에 붙여져서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교 종교 단체에서도 사용하는 용어이다. 예를 들어 프로테스탄트, 유대교, 이슬람에도 자신의 정설이 있다. 〔어원 및 개념〕 '정설' 의 어원인 그리스어의 '오르토독소스 (Ορθόδοξ

정성낙(1831~1866)10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본래 평택(平澤) 사람으로 소년이었을 때 천주교를 배워 믿었다. 그는 자유롭게 계명을 지키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 다른 지방으로 가서 살고 있다가,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잠시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였다. 그러나 박해 때 순교하지 않으면 영혼을 구원하기가 어렵겠다는

정수길 (1897~1978)鄭水吉10

마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897년 4월 10일 경상북도 문경군 용암면 내서리에서 출생. 1911년 9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914년 9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진학하여 1922년 9월 23일 계산동 주교좌 본당에서 드망즈(F.Demange, 安世華)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함양 본당 주임을 거쳐 1926년 5월 신

정수길 (1897~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