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 총 959건
동양 전통의 신앙이나 사상, 인간의 운세, 행위와 점복 (占 卜) 등에서 사용되는 용어의 하나. 길(吉)은 '선하 다. '좋다' , '옳다' 는 의미로, 선비의 말을 따르면 좋은 결과가 온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기서 선비는 통상 글을 읽는 사람이라기보다 점괘를 읽어내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나중에는 의리에 밝은 사람, 지식인을 지청하기도 하였다. 흉(凶)

성인. 축일은 9월 20일. 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김 종한(金宗漢, 안드레아)의 딸. 김대건(金大建, 안드레 아) 신부의 당고모. 충청도 솔뫼(현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 산리)의 독실한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17세 때 교우인 손 연욱(요셉)과 혼인했고, 여러 자녀를 낳아 모두 열심한 신자로 교육시켰다. 1824년 남편이 해미(海美)에서 순 교하자 가난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어려서부터 몸이 불구였던 탓 에 외교인들 사이에서는 '꼽추 할멈' , 교우들 사이에서 는 '꼽추 루시아' 로 불렸다. 서울에서 태어나 신유박해 (辛酉迫害) 이전에 입교했으나, 남편과 가족들이 모두 외교인이라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다가 교우들과 교류를 갖게 되면서 집을 나와 교우들 집에 얹혀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한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일명 '진주의 모친' . 시골 교 우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집이 가난하고 부모와 동생이 열심히 수계하지 않자, 13세 무렵에 홀로 상경하여 교우 집에 식모로 들어갔다. 평소 동정 지키기를 원하였으나 부친이 달래고 강요하여 혼인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아 들과 딸을 낳았지만, 남편이 끝내 외교인으로 죽자 딸을 데리고 신앙 생활을 하

순교자. 세례명은 시몬. 충청도 서산(瑞山)의 부유한 중인 집안 출신으로, 주문모(周文謨) 신부 입국 전에 입 교하였다. 입교 후 얼마 안되어 동생 김창귀(金昌貴, 타 대오)와 함께 재산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고산(高山)으 로 이주하여 살았는데, 여기에서 박해를 피해 지방 교우 촌을 순방하던 주문모 신부를 만나면서 더욱 믿음이 강 해져 고산 지역에서는 유명
한국 천주교 초기의 신자. 세례명 요사팟. 자는 정학 (正學). 호는 가귤(嘉橘) 본관은 안동. 병자호란(丙子胡 亂) 당시에 척화(斥和)를 주장하였다가 심양(瀋陽)에 볼 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김상헌(金尙憲)의 후예. 이구(履 九)의 아들. 서울 출신으로 노론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 서부터 경기도 여주(驪州)에 있던 종가의 양자로 입양되 었고, 9세 때에 이미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루도비코. 본관은 경주. 1868년 경상남도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한 김종륜(金宗 倫, 루가)의 증손자. 1902년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오산 리 사기막골에서 김홍연(요한)과 콘스탄시아(성명 미상) 의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용산 예수성심신학 교를 졸업하고 1931년 5월 30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 후 수원 본당(현

부산교구 신부. 세례 명은 알렉시오. 경남 밀 양군 삼랑진읍 미전리 慶南 密陽郡 三浪津邑 美田里)에서 태어났다. 동성상업학교(東星商業 學校)를 거쳐 성 유스 티노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42년 5월 30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해 6월 1일 대구 계산 동(桂山洞) 본당의 보 좌로 사제 생활을 시작 하였고, 1945년 12월 진영(進永) 본당의 제5대 주임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경북 영천군 화산 면 용평동(永川郡 花山面 龍坪洞)에서 태어났다. 성 유 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32년 5월 21일 드망즈 (Demange, 安世華) 주교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고 진주 본당(현 진주 옥봉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이후 12년 동 안 진주 지역의 복음 전파에 주력하였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문제들이
전교 회장 · 총회장 · 교육자 · 민족 운동가. 세례명은 요셉. 본관은 전주(全州). 김석원(金錫元)과 이내순(李 廼順, 마리아)의 아들로 평남 강서군 성태면 연 곡리(江西郡 星台面 硯 谷里)에서 출생하였다. 1929년 평양의 광성고 보(光成高普)를 수료하 고, 1932년 성태면 마 산의 효성학교(曉星學 校) 교원으로 임용되었 다. 1937년 교직을 사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명 안드레아. 충청도 예산(禮山) 여사울(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출생. 1791년 무렵 내포(內浦)의 사도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면장(面長) 직책을 맡아 온 사람으로 본래 거 친 성격을 지녔으나, 입교한 후로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 며 열심히 신앙을 실천하
춘천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네딕도.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6월 24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풍수원 본당 보좌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강제 추방당한 후 노기 남(盧基南, 바오로) 서 울교구장 겸 임시 춘천 감목에 의해 신부 부족 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 던 평양교구로 1942년 5월 파견되었다. 이후 평양

한국의 무교회(無敎會) 기독교 운동의 창도자 중 한 사람. 조선 초 함흥차사 박순(朴淳)과 함께 함흥에 갔다 가 요행히 죽음을 면하고 그 근처에 정착하게 되었던 김 덕재(金德載)의 후손. 1901년 4월 18일 함경남도 함흥 사포리에서 김염희(金念熙)와 양신(楊愼)의 장남으로 태어나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도일, 동경고등사범학 교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박물

한국 천주교회사가. 세례명은 이냐시오. 본관은 김해 (金海). 호는 지원(志園). 필명은 달성산인(達城山人). 김상연(金湘連, 바오로)의 셋째 아들로 대구시 신암동 715번지에서 태어났다. 1892년 신암동 공소를 설립한 아버지로부터 신앙의 지평을 넓혀갔고, 대구 지방의 민 족 운동과 노동 운동에 헌신했던 큰형 김하정(金夏鼎, 루가)으로부터 민족과 가난한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의 순교자. 전라도 고산(高山) 출신으로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살았다. 그 후 천주교 를 자유롭게 신봉하기 위해 1801년 2월 초(음) 배론(舟 論, 현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 산중으로 들어가 옹기점 을 운영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2월 그믐, 황사영(黃嗣永, 알렉산델)이 신유박해를 피해 김한빈(金 漢彬, 베드로
부산교구 신부. 세례 명은 필립보. 본관은 연 안(延安). 신앙을 버리 라는 형제들을 피하여 황해도에서 내려와 김 제 수류(金堤 水流)에 정착한 김종서(金鍾瑞 혹은 成九, 시몬)의 4남 2녀 중 다섯째로 1914 년 8월 30일 태어났다. 8세에 진안 한들(大坪, 鎮安郡 馬靈面 延章里)로 이주하였고, 12세에 형 김기운(金基運, 토마 스)의 권유로 성 유스

구한말의 천주교 전 교 회장이요 교리서 저 술가. 명도회(明道會) 의 도회장(都會長, 총회 장). 세례명은 요한. 본 관은 김해(金海). 황해 도 수안군 무송동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글공 부에 힘써 15세 때 향 시(鄕試)에 합격하였 다. 이 무렵부터 인생 문제에 대하여 고민을 하였으며 한때 경향(京 鄕)의 유명 인사를 찾 아 교유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천주교인. 천주가사 (自身歌)의 저자. 세 례명은 야고보. 본관은 예안. 김휘중(金輝重, 요셉) 신부 의 부친. 그의 집안은 경상도 예천 출신인 조부 김 안토 니오 때 천주교에 입교하였으며, 그가 신앙 생활을 위해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현 배론 성지가 있는 지역) 인근 으로 이주하면서 이곳에 정착하였다. 김낙호가 태어난 곳도 이곳 구학리의 꽃담(일명
제2대 수원교구장. 주교. 세례명은 안젤로. 1922년 만주 간도성 연길현 다조구 대령동(間島省 延吉縣 茶條溝 大領洞)에서 출생. 14세 때 수원에 살던 형을 찾아가 그곳에서 수원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어 덕원(德源) 신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10월 17일 연길교구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옥에 갇혀 있던 연길교구장 브레허(Breher, 白化東) 주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로사. 일명 '전의 감골집' .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과부가 된 후 천주교 에 입교하였다. 이때부터 모친과 동생들을 돌보며 열심 히 수계하기 시작하였고, 선교사들이 입국하자 자주 성 사를 받고 때로는 음식도 마련해 주었다. 이로 인해 1839년 1월 16일(음 1938년 12월 2일) 권득인(權得仁, 베드로) 일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