ㅊ · 총 229건
순교자. 세례명은 암브로시오. 충청도 충주 출신으로 경상도 안동으로 이사하여 살 때 박 요한에게 교리를 배우고,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후 상주 장재동으로 이사하여 회장을 맡는 등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66년 3월 20일(음) 경포에게 체포되어 청주로 압송된 후 서울로 이송되어 순교하였다. 한편 그에 대해서는 충청도
을묘박해(乙卯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마티아.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순교한 최인철(崔仁喆, 이냐시오)의 형이자, 최창현(崔昌顯, 요한) 회장의 친척. 1765년 서울의 중인(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 이벽(李檗,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입교 초기부터 그는 동료들과 함께 이웃에 복

순교자. 세례명은 요한. 일명 영준(英俊). 경기도 용인 굴암 태생으로 7~8세 때 부친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며, 1839년경에 용인 교우 이학진(李學進)의 권유로 앵베르(L.-J.-M. Imbert, 范世亨)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김씨와 혼인하여 신앙 생활을 하다가 상처(喪妻) 후 주 데레사와 재혼하였고, 서울 아현에 거주하며 회장직을 수행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이냐시오. 1795년 순교한 최인길(崔仁吉, 마티아)의 아우. 서울의 중인(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17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초기에 형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1791년의 신해박해(辛亥迫害) 때 형과 함께 체포되어 형조로 끌려간 뒤 여러 동료들과 함께 협박과 회유, 형벌을 번갈아 받아

대구대교구 청년 운동가. 세례명은 요한. 호는 노호(蘆湖). 1901년 12월 27일 대구시 남구 대명1동 801-2번지에서 최경윤(요한)과 정 마리아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4월에 대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1923년 3월에 중퇴하였다. 그는 최정복(崔正福) · 윤창두(尹昌斗) · 이효상(李孝祥) · 서정
주교. 초대 부산교구장. 세례명은 요한. 1912년 2월 24일 경북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에서 최봉조(崔鳳祚, 세례자 요한)와 서해수(徐解壽, 요안나)의 8남매 중 다섯째로 출생하였다. 13세까지 한문 서당과 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26년 9월 18일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여 1937년에 졸업하였다. 1938년 6월 11일에 대구 계산동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바르바라.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로 경기도 여주에서 순교한 최창주(崔昌周, 마르첼리노)의 딸이며, 1839년의 기해박해로 전주에서 순교한 신태보(申太甫, 베드로)의 며느리. 어릴 때부터 교리를 배워 신앙 생활을 해 오던 그녀는 부친이 순교한 뒤 비참한 생활을 하였지만, 천주와 이웃에 대한 열렬한 애덕과 인내만은
순교자. 세례명은 라자로. 최천여(베드로)의 동생. 경상도 출신으로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입교하였다. 최종여 형제는 부모와 함께 고향을 떠나 산곡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였는데, 1866년경에는 충청도 목천 소학골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일어나면서 1866년 10월 10일(음) 형제가 함께 목천 포교에게 체포되었고, 며칠 동안
기업인. 진덕그룹 창설자. 세례명은 요셉. 1925년 10월 5일 대구에서 출생하였으며, 1943년에 대구공업중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실업계에 투신하였다. 1949년에 대구 계산동 주교좌 본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1952년 7월 6일 유정호(劉貞浩, 루치아)와 결혼하였다. 1969년에 (주)진덕산업을 설립한 데 이어 (주)진덕발효판매 · (주)칠포개발 ·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르코. 1890년 4월 21일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한 뒤 1920년 9월 18일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의주 본당 보좌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21년 7월 4일에 공주(현 중동) 본당 5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복음 전파를 위해 보다 넓은 성당과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지만, 재
프란치스코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요한. 1957년 9월 15일에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왕림리에서 최상적(스테파노)과 이경례(안나)의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72년에 성신고등학교에 들어가 수학하였으며, 1976년에 서울 가톨릭대학에 입학하였다. 같은 해 2월 26일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1982년 1월 26일에 대전 목동 수도원에서 수련을 시
원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르톨로메오. 1926년 8월 20일 강원도 원성군 신림면 용암리 55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엄격한 신앙 생활을 하던 증조부 최도철(바르나바)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고자 결심하였다. 성신중학교를 거쳐 1954년 5월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5월 17일에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그 뒤 육군 본
대주교. 제8대 광주대교구장. 세례명은 안드레아. 1936년 9월 15일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갈곡리에서 최복남(야고보)과 박 마리아의 3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1955년 2월에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3월에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 본과 3년을 마친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62년 7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아킴. 1937년 8월 9일에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남천리 209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961년 12월 30일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후암동 본당 보좌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3년 7월에 육군 군종 신부로 입대한 후 1965년 10월 월남(현 베트남)의 퀴논 지구 천주교회 등을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마르첼리노. 일명 '여종' . 1840년의 전주 순교자 최조이(崔召史, 바르바라)의 부친이며, 1801년의 여주 순교자 원경도(元景道, 요한)와 1839년의 전주 순교자 신태보(申太甫, 베드로)와 사돈간이다. 경기도 여주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40대 초반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 후 온 가족을 입교시키고 열심히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요한. 호는 관천(冠泉) .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최창흡(崔昌洽, 베드로) 성인의 이복 형이요, 1795년의 을묘박해(乙卯迫害) 순교자 최인길(崔仁吉, 마티아)과 1801년의 신유박해 순교자 최필공(崔必恭, 토마스)의 인척. 서울의 중인(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입정동(笠井洞)에서 살았으므로 신자들 사이

순교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여칠' .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로 순교한 성녀 손소벽(孫小碧, 막달레나)의 남편이자 성인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의 부친. 교회 밀사 조신철(趙信喆, 가롤로) 성인의 장인.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최창현(崔昌顯, 요한) 회장의 이복 동생. 서울의 중인(역관) 집안에서 태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토마스(혹은 마티아). 1801년 순교한 최필제(崔必悌, 베드로)의 사촌형이자, 최창현(崔昌顯, 요한)과 정인혁(鄭仁赫, 타대오)의 친척. 서울의 중인(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46세 때인 1790년에 사촌 동생 최필제와 함께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그의 조상들 중에는 조정에서 의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