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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넬, 모리스 조제프 (1884~1918)11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마오로시오. 한국명은 간홍모(簡弘模) . 1884년 11월 4일 프랑스 북부 두아니(Doignie)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불로뉴(Boulogne) 지방의 소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05년 9월 14일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10년 9월 24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뒤 조선 선교사로

카노, 멜키오르 (1509~1560)11

스페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주교. 신학자. 〔생애와 활동〕 신학 방법론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카노는 1509년 1월 6일 스페인 중동부에 있는 쿠엥카(Cuenca) 주의 타란콘(Tarancón)에서 태어났다. 1523년 그는 살라망카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한 후 살라망카 대학교에서 4~1527년까지 디에고(Diego de Astudillo)로부터

카노, 멜키오르 (1509~1560)
카노, 알론소 (1601~1667)11

17세기 스페인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후에 사제가 됨. 〔생애와 작품〕 1601년 3월 19일 스페인의 그라나다(Granada)에서 제단화를 만드는 미겔 카노(Miguel Cano)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614년에 그의 가족 모두가 세비야(Sevilla)로 이주하였다. 1616년부터 세비야에 있는 파체코(F. Pacheco, 1564~1654)의 작

카노, 알론소 (1601~1667)
카노바, 안토니오 (757~182)11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신고전주의 조각가. 화가. 건축가. 〔생 애〕 1757년 11월 1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80km 떨어진 포사뇨(Possagno)에서 태어났으며, 네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채석공이었던 할아버지 피사노(Pisano Canova)가 그를 키우고 가르쳤다. 카노바는 열 살도 되기 전에 흙을 주무르며 작은 대리석 유해함에 조각을 하

카노바, 안토니오 (757~182)
카노사 사건- 事件11

1077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1056~1106)가 북이탈리아의 카노사(Canossa) 성(城)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7세(1073~1085)에게 사죄함으로써 평신도의 성직 서임권 논쟁(controversia de investituris)에서 교황권의 우위가 확인된 사건. 황제의 입장에서 '카노사의 굴욕' 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카노사 사

카노사 사건
카니발 (⇨ 사육제)11
카다스, 조제프 프랑수아 (1878~1950)11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요셉. 한국명은 강달순(美達淳). 1878년 9월 27일 프랑스 남부 타른(Ta-m) 지방 알비(Albi) 교구의 레다스 에팡티에(Lédas-et-Pentiès)에서 프랑수아 카다스(Fran-çois Cadars)와 쥘리 부토네(Julie Boutonnet)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알비 교구의 대신학교

카다스, 조제프 프랑수아 (1878~1950)
카데쉬11

성서의 지명. 이스라엘과 시리아 지역에서 여러 곳의 지명으로 등장한다. 한글 성서에서 이 지명은 '카데스', 또는 '케데스' 라고 번역되었다. 씬 광야에 있는 도시 : 이 도시는 '카데쉬-바르네아'(קָדֵשׁ בַּרְנֵעַ)의 약칭으로서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에 있으며 씬 광야에 위치한 도시로 등장한다(민수 34, 4 ; 여호 15, 3 ; 에제 47

카디쉬11

유대교에서 가장 유명한 기도문이자 예배 때 부르는 송영(誦詠). 아람어로 '거룩' 을 뜻하는 단어인 '카디쉬'(קדוש)에서 유래된 것으로, 공공 예배의 개인적인 부분이 끝날 때 회중들의 응답으로 암송되거나 예배 자체를 끝마칠 때에 암송되었던 송영. 대부분 아람어로 되어 있는 카디쉬는 네 가지 형태가 있다. 우선 '전체 카디쉬' (Whole Kaddish)

카라바조 (1573~1610)11

이탈리아 화가.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 〔생애와 작품〕 초기 생애(1573~1596) : 카라바조는 1573년 9월 28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의 카라바조(Caravaggio)라는 작은 마을에서 페르모 메리시(Fermo Merisi)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루치아 아라토리(Lucia Aratori)의 맏아들로

카라바조 (1573~1610)
카르케미쉬11

시리아 북부 알레포(Aleppo)의 북동쪽 100km 지점에 위치한 유프라테스 강 동쪽 변의 고대 도시. 오늘날에는 제라블루스(Jerablus)로 알려져 있다. 카르케미쉬는 메소포타미아와 아나톨리아,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를 잇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정치적 · 상업적인 중심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특히 유프라테스강의 굽은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도강을

카르케미쉬
카르타고11

북아프리카에 있는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Tuns)에서 동북쪽으로 2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항구 도시 로마 제국의 도시로 고대 지중해 역사와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도시의 역사〕 서지중해에 흩어져 살던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814년 이곳에 정착하여 도시를 세우고 이곳을 '새로운 도시' 라는 뜻의 페니키아어 '카르트 하다스트' (K

카르타고
카르투지오회 - 會11

1084년 성 브루노(Bruno, 1032?~1101)에 의해 설립된 수도회. 이 회의 명칭은 프랑스 지명 '샤르트뢰즈' (Chartreuse)의 라틴어 표기인 '카르투시아' (Cartusia)에서 유래한다. '샤르트뢰즈' 가 영어로 전해지면서 와전되어 중세에 카르투지오회가 설립되었던 영국의 여러 지명을 '차터하우스 (Charterhouse)라고 불렀다.

카르투지오회
카르파초, 비토레 (1460?~1526?)11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에 속한 화가. 본명은 비토레 스카르파차(Vittore Scarpazza) . 〔생애와 작품〕 베네치아에서 모피 상인인 피에트로 스카르파자(Pietro Scarpazza)의 아들로 태어난 카르파초는 벨리니 형제(Gentile Bellini, Giovanni Bellini)의 제자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바스티아니(Laz

카르파초, 비토레 (1460?~1526?)
카를 5세 (1500~1558) - 五世11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1519~1556). 스페인의 왕(1516~1556) . 오스트리아의 대공(1519~1521) . 〔출생과 성장〕 카를 5세는 1500년 2월 24일 벨기에 의 헨트(Ghent)에서, 독일의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막시밀리안 1세(1493~1519)의 아들이며 부르고뉴(Bourgogne)의 공작인 펠리페 1세(1478~150

카를 5세 (1500~1558)
카를 대제 (742~814) - 大帝11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750~887)의 제2대 왕(768~814) . 지속적인 정복 활동을 통해 유럽을 거의 통일하였으며, 그 지역에 거주하던 부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켜 종교적 통일까지 이룩하였다. 카를 대제는 이른바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 를 추진함으로써 게르만 문화와 고대 그리스 · 로마 문화를 그리스도교 문화와 융합시킨 새로운 유형의 유럽

카를 대제 (742~814)
카를 마르텔 (688?~741)11

프랑크 왕국의 궁재(宮宰, 715~741). 프랑크족 통치자인 피핀 2세(687~714)의 서자이며, 프랑크 왕국의 전체 영토를 재통일한 인물. 프랑스에서는 샤를 마르텔(Charles Martel)이라 불린다. 그는 유럽의 그리스도교 국가들을 위협하며 북상하고있던 이슬람 세력을 732년 푸아티에(Poitiers)에서 격퇴하였으며, 보니파시오(Bonifati

카를슈타트, 안드레아스 루돌프 보덴슈타인 폰 (⇨ 루터)11
카리스마11

'은사' 나 '무상의 선물' 이라는 의미를 지닌 특별한 은총[特恩] 또는 은사. 교회를 건설하는 사랑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성화 은총을 위해 있는 것이며, 또 교회의 공동선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스어 '카리스마' (χάρισμα)와 복수형인 '카리스마타' (χάρισματα)는 모두 '은사' 를 뜻하며, 어원이 같은 '카리스' (χάρις)는 '은혜' 나 '

카리스마
카리시미, 자코모(1605~1674)11

17세기 . 이탈리아의 작곡가. 라틴 오리토리오가 그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다. 〔생 애〕 그의 본래 이름은 '아미코' (Amico)였으나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이름인 '카리시모' (Carissimo, 사랑스러운 이)를 따서 '카리시미' (Carissimi, 사랑스러운 이들)라는 별칭을 사용함으로써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