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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還生12

생명체, 특히 인간이 사후에 신체의 소멸과 더불어 영 =원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남아서 새로이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 '재생' (再生, punar-janma) 이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형태의 환생, 혹은 재생에 대한 믿음은 전세계 원시 부족의 문화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믿음이며, 특히 중부 오스트레일리아와 서부 아프리카의 토속 사회에 서

환속還俗12

성직자가 중대한 이유로 성직자로서의 권리와 특전과 법률상 조건을 영구히 상실하고 평신도처럼 되어(assimilatio) 성품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 〔개 념〕 현행 교회법전은 종신 서약한 수도자가 다른 회로 전속하는 것과 관련하여 '수도회에서 떠남' 이란 뜻으로 '환속' 이란 용어를 단 한 번 사용하였다(684조 2 항). 그러나 환속에 대한 명확한

환시幻視12

하느님이 당신을 계시하기 위해 적용하는 자기 전달의 한 방법(민수 12, 6). 본질적으로 초월적 속성을 가지며, 신체 기관을 통한 일반적 개념에서 '보는 것'과 구별되는 일종의 '체험되어지는 어떤 것' 이다. 환시를 체험한다고 하였을 때, 그 환시자가 보게 된 광경의 소재가 되는 것들, 즉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실재들은 그 자체의 존재론적 기능과 의

환시
환희歡喜12

즐거워 기뻐함. 다른 말로 '기쁨' 이라고도 한다. 성서에 나오는 기쁨에 관한 표현은 다양하지만, 그 근원은 언제나 하느님과 그분의 선물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곤경에서 구해지거나 구원에 대한 기대에 차 있을 때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신약성서에서는 구세주가 와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기에 그분의 오심이 기뻐할 근거가 된다. 기쁨, 즐거움 또는

활덜린, 프리드리히12

독일 고전주의 시대의 서정 시인. 〔생 애〕 1770년 3월 20일 슈바벤 지방의 네카어(Neckar) 강변에 있는 작은 도시 라우펜(Laufen)에서 하인리히 프리드리히(Heinrich Friedrich Hölderlin, 1736~1772)와 요한나 크리스티나(Johanna Christina Heyn, 1748~1828)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

활덜린, 프리드리히
황간 본당黃澗本堂12

청주교구 소속 본당. 충북 영동군 황간면 남성리 544 소재. 1957년 10월 5일 영동 본당에서 분리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루치아. 관할 구역은 영동군 황간면, 추 풍령면, 매곡면, 상촌면 전 지역. 공소는 상촌 · 천덕 등 2개소. 〔교 세〕 1964년 1,248명, 1970년 1,796명, 1975년 1,597명, 1980년 1,436명, 19

황간 본당
황금동 본당黃金洞本堂12

①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김천시 황금동 76-18소재. 1901년 4월 27일 가실 본당에서 분리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김천시 황금동 · 모암동 · 용호동 · 양천동 전역과 성내동 · 남산동 · 구성면 ·조마면 일부 지역. [교 세] 1901년 1,024명, 1910년 1,720명, 1965년 3,650명, 1970년 2,0

황금동 본당
황금률黃金律12

황금처럼 빛나는 계율이라는 의미로, 그리스도교 윤리의 근본 원리. 18세기 이후 마태오 복음 7장 12절과 루가 복음 6장 31절에 언급된 예수의 말씀을 윤리적인 가르침으로 이해하여 '황금률' 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루가 6, 31 ; 참조 : 마태 7, 12ㄱ). 하지만 황금률은 예

황기원黃基元(1828~1866)12

순교자. 세례명은 안드레아. 황석두(黃錫斗, 루가) 성 인의 조카. 순교자 황천일(黃千日, 요한)의 형. 1828년 충주에서 태어났다. 20세가 지나서야 삼촌인 황석두에 게 천주교 교리를 배웠으나 몇 년 동안 냉담하다가 황석두의 권유로 페롱(S. Féron, 權) 신부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이즈음 홍산에서 서천 산막동으로 이사하였다. 황석두를 따라 서울을

황등 본당黃登本堂12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리 759 소재. 1960년 3월 19일 이리(현 창인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익산 시 황등면, 삼기면과 함라면 · 월성동 · 임상동 · 군산시 서수면 일부이고, 공소는 삼기 · 신등 · 월성 3개소. 〔교 세〕 1961년 713명, 1964년 729명, 1971년 6

황등 본당
황민성黃时性(1923~1984)12

주교. 제2대 대전교구장. 세례명은 베드로. 1923년 8 월 1일 경기도 고양군 지도면 행주리에서 황찬수(黃燦 秀, 빈천시오)와 최누시(루치아)의 2남 중 장남으로 출생. 수원교구 소속의 황익성(黃益性, 아우구스티노) 신부의 형이다. 1938년 동성상업고등학교 을조반에 입학하여 1942년에 졸업하고, 이듬해 9월 성신대학에 입학하여 1948년 6월에 졸업

황민성
황사영黃嗣永(1775~1801)12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알렉시오. 자는 덕소(德紹). 호는 비원(斐園). 일명 시복(時福). 본은 창원(昌原)이고 당색은 남인. 공조 판서 준(峻)의 증손자 이며 부정자 석범(錫範)의 아들. (帛書)의 저자로 유명하다. 〔입교와 교회 활동〕 황사영은 서울 아현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모친인 평창 이씨 윤혜(允惠)와 증조부 슬하에서 성장하였으며,

황사영
황사윤 黃 ─ (⇨ 황석지)12
황사평黃沙坪12

1901년 5월 봉세관(封稅官)의 조세 수탈과 천주교회 의 교폐(敎弊)에 제주도민들이 반발하여 발생한 제주 교 안(濟州敎案, 신축 교난)으로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을 매장한 곳. 제주도 제주시 화북2동 5618 소재. 교안 당시 피살된 신자들 가운데 연고 없는 시신들이 매장되어 있으며, 당시 그 수는 분묘 26기에 시신 28구였다. 1990 년대의 성역화 사

황사평
황새바위12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 사적지. 충남 공주시 교동 118-2번지 소재. 박해 기간 동안 신자들의 사형이 집행 된 곳. 이곳 가까이에 황새들이 많이 서식했기 때문에 황 새바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도 하지만, 목에 큰 항쇄 (項鎖)를 쓴 죄수들이 이 언덕 바위 앞으로 끌려나와 죽었다고 해서 항쇄바위로 불리기도 하였다. 〔박해와 황새바위〕 공주에는 조선 건국 직후

황새바위
황석두 루가 선교회黃錫斗 - 宣敎會12

생명의 복음화와 외방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사도 생활단. 설립자는 김동일(金東-, 요한 보스코) 신부이며, 1991년 10월 '성 황석두 루가 전교 수도회' 로 인가 되었다가 2001년 12월 6일 현재의 성 황석두 루가 선교 형제회와 자매회라는 사도 생활단으로 재출범하였다. 본원은 충북 청원군 오창면 성산리 421-3번지에 위치해 있다. 〔선교회의 설립

황석두 루가 전교 수녀회 黃錫斗 - 傳敎修女會 (V_{2} 성 황석두 루가 전교 수녀회 ; \Rightarrow 황석두 루가 선교회)12
황석두 루가 전교 수도회 黃錫斗 - 傳敎修道會 (V_{2} 성 황석두 루가 전교 수도회 ; → 황석두 루가 선교회)12
황석두 黃錫斗(1813~1866)12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루가. 자(字)는 재건. 회장. 충청도 연풍의 부유한 양반집에서 태어났다. 15세에 혼인하였으며, 21세 때 한문 선생의 권고로 교회 서적을 읽고 감동하여 입교하였다. 그러나 부친의 반대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3년간 벙어리 노릇을 하며 교리 서적을 탐독하는 한편, 박해하던 부친과 가족 들도 권면하여 입교시켰

황석두 黃錫斗(1813~1866)
황석지黃石之(? ~1833)12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일명 사윤. 경기도 수원 샘 골 태생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홍주 당산리 태생이라는 기록도 있다. 40세 때 온가족과 함께 입교하였으며, 1821년에 처자를 모두 잃고 10여 년 동안 홀로 살면서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1832년에 상경하여 아현동 에 사는 조카 황 안드레아의 집에 얹혀 살던 중 그해 9월 에 조카의 가족과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