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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 철학적 방법 원리를 활용하여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 (人間學的 轉換)을 이루려는 신학의 한 노선으로서, 현대 가톨릭 신학의 거장인 라너(K. Rahner, 1904~1984)에 의해 시도되었다. [정의와 당위성〕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 이란 인간 이해를 하느님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라너가 초월 신학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한 것은 신
피조물은 본질상 하나이고, 인간은 본래 선하며, 가장 심오한 진리를 밝히는 데에는 논리나 경험보다는 통찰력이 더 낫다는 믿음에 기초한 관념적 사상 체계. 인간에 대한 경험론적 이해를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며, 인간의 마음이나 영혼에 절대적인 진리가 내재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초절주의' (超絶主義)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초월적인 것' 과 '초월론적인 것'

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서구 초장동 60-3 소재. 1959년 10월 11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초장동 · 토성동 · 부민동 · 충무동 · 남부민1동 전 지역과 아미동 1가 · 2가 일부 지역. 〔교 세〕 1960년 1,780명, 1963년 1,999명, 1969년 2,595명, 1973년 1,999명, 1979년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성주군 초전면 대장 1리 655-5 소재. 1980년 1월 5일 성주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 필립보. 관할 구역은 초전면 · 벽진면 전 지역과 월항면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달창 · 벽진 · 용봉 공소 등 3개소. 〔교 세〕 1980년 978명, 1985년 1,431명, 1990년 1,410명, 1995

교구 전체에서 교구장 주교의 사목 통치를 고정적으로 보좌하는 직무를 가진 사람. [역 사] 대리(vicarius) 제도는 로마 제국의 행정 제도에서 채택한 것으로 초대 교회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그것은 교황을 대리하는 직무였으며, 교구장 주교를 보좌하는 총대리 직무가 등장한 것은 훨씬 후대인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 이후이다. 그리고 트리엔트 공의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에 있는 총대주교좌(Patriarcha-tus)의 최고권자. 한국에서는 1983년의 새 교회법전을 번역하면서 '총주교' 라고 옮겼다. 〔유 래〕 본래 이 용어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조(聖祖)인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하지만 구약성서에서 이 용어는 사제와 레위 가문의 수령(1역대 24, 31), 이스라엘 지파를 다스
수도회의 최고 지도자로서 수도회의 모든 관구와 모든 수도원, 수도회의 회원에 대하여 자신들의 고유법에 따라 권한을 갖는 장상. 총원장이라는 직함은 1917년 교회법전의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는데, 수도회의 장(長)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명칭, 즉 수석 자치 수도원장, 수석 자치 수녀원장, 총장, 총조정자, 총직무자, 총원장, 공동체의 조정자 등 다양한 직위를
회원 전체가 그 수도회의 고유법이 정한 방식에 따라 의결에 참여하는 수도회 내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대표 기구. I. 의 미 [교회법적인 개념과 본질〕 총회는 회원 전체가 고유법이 정한 방식에 따라 의결에 함께 참여하는 합의체 사단법인이다(교회법 115조 2항). 또한 수도회 내의 최고 권위를 갖는 대표 기구로서 사랑 안에 일치를 이루며 총장의 선출, 안건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비르지타(혹은 가타리나). 1839년 원주에서 순교한 최해성(崔海成, 요한)의 고모.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이전에 천주교에 입교하여 남편과 함께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러다가 신유박해 때 남편이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을 숨겨 준 죄로 체포되어 유배를 가게 되자, 그녀도 남편을 따라 그곳으로 가서 생활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충청남도 직산 출신으로, 첫째 형인 최경헌(崔敬憲)과 둘째 형인 최경희(崔敬喜) 등 3형제가 함께 살았다. 이들은 1862년경에 같은 동네에 사는 윤평심(尹平心)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고, 1866년에 체포되어 12월 15일(음)에 서울 포도청에서 신문을 받았다. 체포 당시 최경원은 25세, 최경헌은 31세, 최경희는 28세였으며
순교 성인.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본관은 경주(慶州). 보명은 영눌(榮訥), 일명 치운 혹은 영환(永煥).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이성례(李聖禮, 마리아)의 남편이며, 두 번째 한국인 성직자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부친. 1805년 홍주 다래골의 새터(현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의 다락골)에서 최인주(崔仁柱)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1788년 서울 서빙고에서 태어났으며, 20여 세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그의 직업은 목수였고,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일어나자 1868년 봄에 용인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11일(음) 용인에서 김성실(金成實, 베드로) · 오군일과 함께 체포되어 81세의 나이로 서울 좌포도청에서 순교하였다. 한편 《치
주교. 제2대 인천교구장. 세례명은 보니파시오. 1948년 5월 16일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마산리 278번지에서 최윤봉(파비아노)과 정용환(데레사) 사이에서 6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967년 2월에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를, 1974년 2월에는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였다. 1975년 12월 6일에 인천 답동 성당에서 인천교구장 맥노튼(W.

순교자. 세례명은 요셉. 본관은 경주(慶州).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성인의 친척. 홍주 다래골(현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출신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가난을 극복하는 인종(忍從)과 열심한 기도 생활로 신자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다. 기해박해가 한창이던 1839년 8월(음) 한 배교자의 밀고로 체포된 그는
주교. 제3대 수원교구장. 세례명은 바오로. 1948년 1월 15일 경기도 평택군 서탄면 수월암리 602번지에서 최준태(야고보)와 박 수산나 사이에서 2남 4녀 중 다섯째로 출생하였다. 1966년에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를, 1973년에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한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75년 아이슈타트(Eichststatt) 대학교에서 신학 석사 학위

주교. 제6대 대구대교구장. 세례명은 요한. 1902년 6월 2일 대구 비산동에서 출생하여 해성재 서당과 성립학교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다. 1914년 10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제1회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수학한 후, 1926년 5월 29일 졸업과 함께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직후인 5월 31일에 제주 홍로(현 서귀포) 본당

순교자. 세례명은 미카엘. 서울 북창동에 거주하다가 1868년 3월 29일(음) 체포되어 나흘 만에 서울 좌포도청에서 6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그의 아내 심 마리아와 누이인 최 마리아, 그리고 계수인 김 마리아와 조카 최문성도 이듬해인 1869년에 순교하였다. ※ 참고문헌 《치명일기》 260-264번/《병인치명사적》 21권. 〔方相根〕
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1924년 1월 27일 원산에서 3대째 내려오는 천주교 집안의 4형제 중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1937년 3월 20일 원산 해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소속 본당이던 원산 본당 주임인 담(F. Damm, 卓世榮) 신부의 권유로 1937년 4월 1일 덕원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일제 말기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정상적인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드로. 1881년 5월 16일 충남 공주 서재에서 최제환(요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충남 천원군 목천면 서덕리(서덕골)를 거쳐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덕성리 쇄재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고, 1900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29세가 되던 해인 1910년 9월 24일 사제로 서품된 후, 곧 황량한 동만주 간도 지방인 간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