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7,126건
순교자. 한국 최초의 여성 회장. 세례명은 골롬바.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향반(鄕狂) 집안에서 태어났다. 뛰어난 통찰력과 곧고 용감한 마음을 지녔다. 10여 세가 되었을 때 불교에 뜻을 두었으나 얼마 아니 가서 이를 포기하였다. 일찍이 충청도 덕산(德山)에 살고 있던 홍지영(洪芝榮)에게 후처로 시집갔으나 남편의 성품이 용렬하여 행복한 가정 생활을 이루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세례명은 베드로. 주교 좌우명은 "네 생명 주께 맡기고 그를 바라라." 194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63년 경기중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69년 동경 죠오찌대학(上智大學)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연구, 이듬해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그는 로마 울바노대학에 유학하여 1973년

전주교구 신부. 세례명은 베네딕도. 전주교구 초대 몬시놀. 본관 진주(晋州). 1917년 8월 24일 전북 익산 나바위에서 오랫동안 회장직을 맡았던 강한태(美漢泰, 요한)의 장남으로 태어나 1925년 용안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본당 신부 카다스(J. Cadars)의 권고로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예과 1년을 마친 후, 1932년 서울

신흥 종교의 하나인 증산교(甑山敎)의 창시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옥(士玉). 호는 증산(甑山). 일반적으로 '증산' 또는 '강증산' 으로 불린다. 흥주(興周)의 아들로 1871년(고종 8) 전라북도 고부(古阜)의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뒤 전라북도 모악산(母岳山) 대원사(大願寺)에 들어가 도통을 연구하던 중 깨달음을 얻었다고 공

수원교구 신부. 세례명은 방그라시오. 황해도 벽성군 나덕면(黃海道 碧城郡 羅德面)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 부친 강재규(姜在奎, 베네딕도)가 24세에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信川郡 斗羅面 清溪洞)에서 안중근(安重根, 토마)의 부친인 안태훈(安泰勳) 진사의 권유로 빌렘(Wihelm, 洪錫九) 신부에게서 영세하면서 천주교를 알게 되었다. 강주희 신부는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강진군 강진읍 평동리 221 소재. 1961년 1월 25일 해남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로사 안나. 관할 구역은 강진읍 · 군동면 · 칠량면 · 대구면 · 도암면 · 신전면 · 작천면 · 병영면 · 음천면 · 성전면 등이고, 공소는 1개소. 〔교 세〕 1961년 172명, 1968년 350명, 1973년 664명
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사도 요한. 평남 평원(平原)에서 태어났다. 동성상업학교(東星商業學校)를 거쳐 1933년 봄 서울 대신학교 신학 예과(라틴과)를 이수한 후 평양교구장 모리스(John Morris, 睦) 신부의 주선으로 9월에 동경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학교에 유학하였다. 당시는 한국에서 신학생을 외국에 유학 보내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모리스 교구

인천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643 소재. 1958년 1월 29일 김포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 었으며, 주보는 그리스도 왕. 관할 구역은 강화군 전체. 본당 소속 공소로는 강후 공소(하점면 창후리), 고능리 공 소(불은면 고능리), 교동 공소(교동면 대룡리), 내가 공소 (내가면 고천1리), 냉정리 공소(선원면 냉정리), 삼산 공소 (삼

사제가 미사 때 입는 제의 중 가장 먼저 착용하는 아마포(亞麻布)로 된 장방형의 흰 천. 양쪽에 긴 끈이 달려 있어서 어깨 위에 걸치게 된다. 고대 로마인들의 목도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후에 로마에서는 성직자들이 장백의 를 입을 때에 반드시 개두포를 착용하였다. 장방형 중앙에는 입기 전에 사제가 친구(親口)할 수 있도록 십자 표 가 수놓아져 있다. 중세기에는

한국에서 발생한 근대 신흥 종교들에서 현재의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보는 사상. 이 종교들에서는 역사를 둘로 구분하여 지금까지의 시대를 선천 시대(先天時代) 새로 도래할 시대를 후천 시대(後天時代)라 파악하고, 이 중 선천 시대는 모든 것이 드세고 겉으로 드러나는 양(陽)의 시대이며, 후천 시대는 그와 반대되는 음(陰)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개별 교회라는 용어를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사용하였다. 에서는 교구또는 여러 교구들의 연합체, 에서는 개별적인 자율 예법 교회(ecclesia ritualis sui iuris, 교회법 111, 112조), 에서는 교구와 준교구를 뜻한다. 개별 교회는 보편 교회의 하급 행정 단위가 아니고 하나인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역적 구현으로서
특정 지역 주교들의 회의(교회법 439-446조)로서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전체 공의회(concilum plenarium) : 동일한 주교 회의 관할의 모든 개별 교회들을 위하여, 동 주교 회의가 필요하거나 유용하다고 여기는 때마다 사도좌의 승인 아래 개최되는데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 있다(439조). ① 한 나라의 주교 회의 안에 여러 교회 관구들이 있는
교회 법률들(교회법 7~22조)은 그것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 따라 보편법과 개별법으로 구분된다. 가톨릭 교회의 보편법으로는 교회의 최고 권위에 의하여 전세계 모든 라틴 교회를 위하여 제정된 《교회법전》(Codex Iuris Canonici)과 동방 예법 교회들을 위하여 제정된 《동방 교회들 법전》(Codex canonum Ecclesiarum Orient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 구로구 개봉2동 259-3 소재. 1978년 9월 4일 오류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부활. 관할 구역은 고척1 · 2 · 3동을 일원으로 하는 지역. 〔교 세〕 1978년 565명, 1980년 1,880명, 1988년 6,142명, 1993년 6,659명. 〔역대 신부〕 초대 전창문(田昌文) 가브리엘(1978
지상에서의 착한 행실로 죽어서 천상 영광 중에 있는 형제들이 개선가를 부르는 교회, 즉 천국의 교회를 이르는 말. 개선 교회는, 천국의 교회에 도달하기 위하여 싸우는 지상 여정 중의 신전(神戰) 교회와, 죽어 연옥에서 단련 중인 형제들이 머무르는 단련(鍛鍊) 교회와 함께 가톨릭 내세관을 반영하고 있다. 에서도 개선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서울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경기도 개성시 동본리(東本里) 소재. 1901년 약현 본당(藥峴本堂, 현 중림동 본당) 소속이던 송도(松都) 공소를 중심으로 하여 분리 설립되었으며, 초대 본당 신부로는 그 전해에 입국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루블레(H.P. Rouvelet, 黃惠中) 신부가 임명되 었다. 당시 성당이 자리잡은 곳은 1866년의 병인박해 (丙寅迫

어떤 행동의 합법성이나 의무에 대해서 의심이 있을 때, 비록 대립되는 견해가 더 개연적(蓋然的, probable)이라 하더라도 어떤 근거만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윤리 체계' (倫理體系, systemata moralia) 중의 한 방법이다. 다시 말해 이 이론은 인간의 자유를 중시하여, 비록 법에 대치된다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상당한 논리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