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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강도 공의회强盜公議會9

동로마 제국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408~450)가 449년 에페소에서 개최한 공의회. 그러나 451년에 개최된 칼체돈 공의회에서는 이 공의회를 "강도 회의"로 규정하였다. 〔배 경〕 448년경 콘스탄티노플 근교에 있는 수도원의 원장인 에우티케스(Euthyches)는 도릴래움(Dorylaeum)의 에우세비오를 네스토리우스파로 지적하여 비난하였다.

에페소 공의회公議會9

에게 해의 카이스트로스 연안에 위치한 에페소에서 431년에 개최된 세계 제3차 공의회. [배 경] 테오토코스 논쟁과 네스토리우스 : 네스토리우스 논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1~451)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 임명되어 부임할 때 데리고 온 비서 아나타시우스(Anathasius) 신부 때문이었다. 아나타시우스는 "아무도 마

에페소 공의회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人 - 便紙9

신약성서에 속하며 사도 바오로의 이름으로 쓰여진 편지 가운데 하나. 〔저자와 수신인〕 이 편지의 처음은 "하느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에페소에) 사는 성도들에게, 곧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인사합니다)" (1, 1)라고 시작된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보면, 에페소서는 에페소 교회의 신자들을 수신인으로 하여 저자인 바오로가 보

에프렘 (306?~373)9

성인. 부제. 교회 학자. 성서 주해자. 축일은 6월 9일(동방 교회에서는 1월 28일). 시리아인 에프렘, 또는 니시비스의 에프렘이라고도 불린다. 〔생애와 활동〕 306년경 니시비스(Nisibis) 또는 그 근방의 그리스도교 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금욕주의자들과 니시비스의 초대 주교 야고보(303~338)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신학을 전개하였다. 니시비스

에프렘 (306?~373)
에피스코팔리즘9

세계의 전체 주교들 또는 공의회에서의 주교들이 교황보다 위에 있다고 주장한 이론 또는 그 운동. 에피스코팔리즘을 직역하면 '주교주의' (主敎主義)이며, '주교단 우위설' (主敎團優悅)이라고도 한다. 프로테스탄트의 에피스코팔리즘은 '감독 제도주의' 를 뜻하 는데, 가톨릭 교회사에서 언급되는 에피스코팔리즘과는 차이가 있다. 〔발 생〕 교황권은 11세기 교황들의

에피케이아9

서유럽의 사상사(思想史)에서 아주 오래된 덕(德) 가운데 하나. 법이 요구하는 것이 자신의 상황에 맞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인간의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법을 준수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려고 하는 것이다. '형평법' (衡平法) 또는 '수의 해석법' (隨意解釋法)이라고도 한다. 〔개 념〕 에피케이아는 인정법에 대한 하나의 해석 방법으로서, 실정법에서 충

에피쿠로스 (기원전 341 ~270)9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 기원전 341년 사모스(Samos)에서 태어나 플라톤주의자인 사모스의 팜필로스(Pamphilos)와 자연주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기원전 460~370?)의 제자였던 나우시파네스(Nausiphanes, 기원전 4세기)로부터 배웠다. 32세 때부터 제자들을 가르친 그는, 소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에피쿠로스 (기원전 341 ~270)
에피파니오, 살라미스의 (310/320~402/403)9

성인. 살라미스(오늘날의 파마구스타)의 주교(366/367~402/403). 축일은 5월 12일. 〔생애와 활동〕 310~320년 사이에 남부 팔레스티나의 엘레우테로폴리스(Eleutheropolis) 근방에서 태어났으며, 수도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가자(Gaza)의 힐라리온(Hilarion, 291~371)에게 영향을 받아 어린 나이로 이집트에 있는

에피파니오, 살라미스의 (310/320~402/403)
엑스터시 ecstasy (⇨ 몰아 ; 탈혼)9
엔 시 더블류 시 N.C.W.C.9

1919년 9월 미국 가톨릭 교회의 활동 조직 전반을 통합 · 조정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 주교단의 기구. 1917년에 조직된 미국 가톨릭 전시 평의회(National Catholic War Council)를 전신으로 한다. 가톨릭 전시 평의회는 제1차세계대전을 계기로 전시 체제하에서 교회의 힘을 결집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가, 종전 후인 1919년 9월에 교

엔 시 더블류 시 N.C.W.C.
엔도 슈사쿠 (1923 ~ 1996)遠藤周作9

` 일본의 대표적 가톨릭 소설가. 세례명은 바오로. 아호는 고리앙(狐狸庵) 혹은 고리 앙산징(狐狸庵山人) . [생 애] 1923년 3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만주의 다렌(大連)으로 이주하여 초등학교를 다니던 중, 부모가 이혼하자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왔 다. 가톨릭 신자인 이모와 함께 생활하였는데, 먼저 세례를 받은 어머니와 이모의 설

엔도 슈사쿠 (1923 ~ 1996)
엘 그레코 (1541~1614)9

스페인 미술의 거장. 바로크의 선구자로 스페인 최초의 화가.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enikos Theotokopoulos) 보통 '엘 그레코 (그리스인)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이름은 그가 이탈리아에서 생활할 때 얻은 별명으로, 고향을 떠나 일생을 여러 곳을 떠돌며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그에게 붙여진 애칭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태

엘 그레코 (1541~1614)
엘람9

이란 남서부의 후제스탄(Khuzestan) 지역에 있었던 고대 국가. 좁은 의미에서 엘람은 이란의 남서 지역 파르스(Fars)를 말하며, 수도는 안산(Anshan)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의 엘람은 수사(Susa)가 전성기 때 영향력을 행사한 현재 이란의 대부분을 가리킨다. 기원전 2000년대 말에서 1000년대 초까지의 쐐기 문자 문헌에 의하면 엘람은

엘람
엘레아 학파學派9

기원전 5세기 초 이탈리아 남부의 엘레아에서 생겨난 철학 학파.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기원전 565~488)가 주도하고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40~470)가 창시한 학파로서, 존재의 통일성 · 영원성 · 불변성 등과 함께 존재와 사고의 동일성을 주장하고 존재-일자(一者)를 진상(眞相)이라고 주장하였다. 크세노파네스가 조국

엘레우테로 (?~189?)9

성인. 순교자. 교황(174~189?). 축일은 5월 26일. 문헌에 따라 이름이 다른데,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에는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로 표기되어 있다. [생애와 활동] 엘레우테로는 본래 그리스인으로 에피루스(Epirus)의 니코폴리스(Nicopolis)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이름은 아분단시우스(

엘레우테로 (?~189?)
엘로힘9

구약성서에서 사용된 하느님의 이름. 이 히브리어는 하느님을 지칭할 때 "야훼" (יהוה)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구약성서 전체에서 약 2,570번이나 사용되었는데 신명기(374번), 시편(365번), 창세기(219번) 순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신' 혹은 '하느님' 을 뜻하지만, 문맥에 따라 그 의미를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문법적 형태는 복수

엘로힘 전승 문헌 - 傳承文獻 (⇨ 성서 문헌 가설)9
엘리사9

예언자. 엘리야의 계승자. 축일은 6월 14일. 엘리사는 '하느님께서 구원하셨다' 라는 뜻이다. 엘리사는 대략 기원전 850~800년경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지야, 요람, 그리고 여호아스 재위 기간에 활동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수많은 기적을 행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구약성서에는 그에 관한 대목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엘리사
엘리사벳9

성녀. 사제 즈가리야의 아내이자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축일은 11월 5일. 성서에서 엘리사벳은 루가 복음 1장의 예수 탄생 이야기에만 등장한다. 여기에서 엘리사벳은 사제 아론의 후예로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어김없이 지키며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지만, 나이가 들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여성으로 제시되고 있다(루가 1, 5-7). 또한 예수의 어머니

엘리사벳
엘리사벳, 삼위 일체의 (1880~ 1906)三位一體9

복녀. 가르멜 수도회의 신비가. 축일은 11월 9일. 1880년 7월 18일 프랑스의 부르주(Bourges) 근처에서 태어나 4세 때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여읜 엘리사벳은, 아빌라의 데레사(Theresia ab Avila, 1515~1582)의 저서에 심취할 정도로 열심한 신자였던 어머니에게 충실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14세 때 동정녀가 될

엘리사벳, 삼위 일체의 (1880~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