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6

광주 본당廣州本堂1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경안리 84 소재. 1958년 6월 27일 서울교구 신당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관할 구역은 광주군 광주읍, 초월면, 실촌면, 오포면, 중부면 일부. 〔교 세〕 1964년 1,573명, 1974년 1,700명, 1984 년 1,525명, 1993년 2,894명. 〔역대 신부〕

광주 본당
광주대교구光州大敎區1

전라남도 지역을 사목 관할 구역으로 하는 대교구. 전 주교구, 제주교구와 함께 광주관구를 이룬다. 1931년 3 월 10일 전라북도와 함께 전라 감목 대리구(全羅監牧代 理區)로 설정되었으나 전라북도와 분리되어, 1934년 5 월 10일 전남 감목 대리구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1937 년 4월 13일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사목 관할 지역으로 하여 광주 지목구(

광주대교구
광천 본당廣川本堂1

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홍성군 광천읍 신진리 380소재. 1968년 7월 12일 홍성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 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홍성군 광천읍. 〔교 세〕 1968년 264명, 1979년 606명, 1989년 556명 , 1993년 549명. 〔역대 신부〕 초대 펠러르트(Augustine Paillert, 방약종) 아우구스티노(1

광천 본당
광천동 본당光川洞本堂1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광주시 서구 광천동 640 소재. 1970년 11월 9일 북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 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광주시 광천동, 유덕 동, 유치동, 삼소동, 내방동, 화정동, 농성동, 광산군 비 아면 · 하남면 · 남면 · 임동 일부. 〔교 세〕 1970년 105 명, 1980년 1,786명, 1988년 2,569명,

괴레스, 요한 요셉(1776~1848)1

평신도 신학자. 정치 평론가. 정치 철학자. 저술가. 19 세기 독일 가톨릭 부흥 운동의 정신적 지도자. 그의 파 란만장한 생애와 사상의 변모는 보통 3단계로 구분된다. 제1기(1776~1800) : 독일의 코블렌츠(Koblenz)에서 출 생한 괴레스는 그곳의 구 예수회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1786~1793) 계몽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어 그는 자

괴레스, 요한 요셉(1776~1848)
괴산 본당槐山本堂1

청주교구 소속 본당. 충북 괴산군 괴산읍 서부리 291 소재. 1958년 12월 증평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 며, 주보는 성신. 소속 공소로는 고마리 · 칠성 · 세평 · 목도 공소가 있으며, 관할 구역은 괴산군 괴산읍, 소수 면, 감물면, 문광면, 칠성면, 불정면, 사리면 · 청천면 일 부. 〔교 세〕 1968년 2,777명, 1978년 2,515명

괴산 본당
괴정 본당槐亭本堂1

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사하구 괴정1동 1066-1 소재. 1961년 6월 1일 서대신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 되었으며, 주보는 루르드의 성모. 관할 구역은 부산시 감천1동, 구평동, 괴정1~4동, 다대동, 신평동, 감천2동 일부. 〔교 세〕 1962년 1,926명, 1972년 2,682명, 1982 년 6,863명, 1993년 10,223명. 〔역대

괴정동 본당槐亭洞本堂1

대전교구 소속 본당. 대전시 서구 괴정동 425-2 소재 1977년 2월 16일 목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 며, 주보는 사도 성 베드로. 관할 구역은 대전시 괴정동, 가정동, 탄방동, 용문동 일부. 〔교 세〕 1977년 478명 1983년 2,232명, 1989년 2,064명, 1993년 2,129명. 〔역대 신부〕 초대 유봉운(俞鳳雲) 야고보(19

괴정동 본당
佛敎6

Ⅰ . 종교학에서의 불교 Ⅱ . 가톨릭에서 본 불교 석가모니(釋迦牟尼, Sākyamuni)를 교조(敎祖)로 하고 그가 말씀한 교법(敎法)을 신봉하는 종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법(法)이라고 하여 '불법' (佛法),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뜻에서 '불도' (佛道)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는 석가모니가 탄생한 기원전 5세기부터 현재까지 약2,500년 동안 인도와

교
교계 제도敎階制度1

어원적으로 '신성한 것' 을 뜻하는 hieron(ιερον)과 '지배 권' , '통치권' 또는 '원천' (源泉) 등을 뜻하는 arche(άρχη) 의 합성 명사인 hierarches(ιεραρχης)에서 유래되었다. 그 러나 6세기경 디오니시오(Dionysius Areopagita) - 오늘날 까지도 정확한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가 신분 질서의 구분이나

교구敎區1

가톨릭 교회 전체를 뜻하는 보편(세계) 교회를 지역적 으로 구분하는 하나의 기본 단위, 즉 개별(지역) 교회를 일컫는 용어. 교구는 보편 교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개별 교회를 일반적으로 지칭할 때 쓰이며 "교구장 주교가 사제단의 협력을 받아 사목하는 하느님 백성의 한 부분" (주교 11항)을 뜻하는 동시에 교구장 주교에 의해 관할권 이 행사되는 지역도 의미한

교구 납부금教區納付金1

각 본당에서 신자들의 교무금과 헌금의 일부를 정기적 으로 교구에 납부하는 것. 대개는 본당 규모에 따라 납부 금이 차등제로 실시되고 있는데, 규모가 큰 본당은 상대 적으로 많은 비율로 납부하고 규모가 작은 본당은 다소 적게 배정된다. 이 납부금의 대부분은 사제 양성에 지출 되며, 교구청 운영과 신자 재교육, 본당 신설 부지 조성, 자선 및 선교 활동에 쓰여

교구 대의원 회의教區代議員會議1

교구 공동체 전체의 선익을 위하여 교구장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개별 교회의 선발된 사제들과 기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회합(교회법 460조). 역사적으로 교구 대의원 회의(synodus)는 성직자들만의 모임이었으나 현 교회법 전은 "선발된 사제들과 기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회합"으로 규정함으로써 교회의 친교와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역 사〕 예수 그리스도

교구 법원教區法院1

교구에서 발생되는 종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설치된 교회의 법원. 사법 제도에 있어서 교회 법원의 등급은 법원이 위치한 장소에 따라서 결정된다. 교회 법 원의 등급은 4가지로서 첫째는 교구, 둘째는 관구, 세째 는 관구 연립이며, 넷째는 사도좌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등급이 재판의 심급(gradus judicii)과 반드시 일치 하지는 않는다는

교구 법원장 (⇨ 사법 대리)教區法院長1
교구 사목 평의회教區司牧評議會1

개별 교회의 구성원 전체를 대표하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되며, 주교의 권위 아래서 교구 내의 사목 활동에 관한 것을 조사하고 심의하여 이에 대한 실천적 결론을 제시하는 소임을 맡은 기구(교회법 511조). 〔설립 배경〕 이 평의회는 맨 처음 "모든 교구에서는 주교가 주제하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참여하는 사목 평의회가 설립되는 것이 매우

교구 사제教區司祭1

교구에 속한 사제. 현행 교회법에서는 부제품을 받음 으로써 성직자로 되고 승품된 교구나 성직 자치단에 입 적된다(266조 1항). 이 중 교구 사제들은 교구에 입적한 사제로서 주교들을 보필하는 협조자들이지만 가장 일선 에서 신자들을 보살필 책임은 교구 사제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 재속 사제 ; 수도 사제) 〔韓榮萬〕

교구 사제 평의회教區司祭評議會1

사제들이 교구 행정의 효율화와 극대화를 위해 교구 행정 전반에 걸쳐 교구장을 보필하고 자문하는 기구.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효율적인 교 구 사목의 수행을 위해, 사제들이 주교를 효과적으로 돕 고 협력하기 위한 새로운 기구로서 사제 평의회를 조직 하고 이를 교구 내에 설립토록 헌장과 교령들을 통하여 촉구하였다. (Lumen Genti

교구 연립 법원教區聯立法院1

한 교구가 법원 설치 능력이 없어 몇 개의 교구들이 함 께 사도좌의 승인 아래 세운 법원. 교구 단독 설립 법원 과 같이 제1심 법원과 제2심 법원 두 개의 심급이 있다. 〔교구 연립 제1심 법원〕 교구장은 교회법의 규정에 따 라 모든 소송 사건들에 대하여 제1심으로 재판을 하는 교구 법원을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교구는 자기 교구 단독으로 법원 설

교구 연립 신학교教區聯立神學校1

교구의 규모나 재정상 또는 다른 이유로 각 교구마다 신학교를 세울 수 없을 경우, 여러 교구들이 합동으로 설립한 신학교. 신학교의 역사를 보면 초대 교회에서는 주교와 선임 성직자들이 젊은 성직 지원자들을 교리 학 교에서 가르쳤고, 4세기경에는 주교가 자신이 거처하는 집에서 성직 희망자들을 데려다가 가르쳤다. 이후 중세 기에 들어와서는 여러 가지 학문을 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