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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한국에서 활동했던 형제 신부. 형은 안토니오 공베르(Gombert, Antoine, 孔安國), 동생은 줄리앙 공베르(Gombert, Julien, 孔安世). 안토니오는 1875년 4월 25일 태어났고, 줄리앙은 1877년 9월 7일 태어났는데 1900년 8월 1일 함께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0월 9일 함께 한국에 입국하였다. ①

① 교황좌의 ~ 〔공석과 유고의 원인〕]공석의 원인은 교황의 신체적 사망이 확인되거나 교황이 자유 의지로 사임한 경우이다 (교회법 332조 2항). 완전한 유고는 교황이 납치되거나 혼 수 상태에 빠지거나 그 밖의 원인으로 전적으로 무능력 자가 된 경우 또는 공개적으로 배교자나 이단자가 된 경 우이다(415조). 교황좌의 공석이나 완전한 유고 때에는 아무것도
충청도 지역 초기 본당 중의 하나. 충남 아산군 인주 면 공세리 소재. 1895년 6월 양촌 본당(陽村本堂, 구합 덕 본당의 전신)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베네 딕도. 현 대전교구 소속 본당으로, 관할 지역은 아산군 인주면 · 영인면 · 염치면 지역이고, 소속 공소로는 걸매 리 · 밀두리 공소 등 15개소가 있다. '공세리' 란 명칭은 조선 시대

본당 신부가 상주하지는 않으나 본당에서 소속 신자 집단으로 인정한 교우촌 또는 교우들이 집단적으로 살고 있는 소도시의 한 장소. 본당 신부는 관할 공소들을 해마다 적어도 봄, 가을에 두 번 방문하고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어야 하였다. 성 사, 특히 고해성사를 주거나 받는다는 뜻에서 이 방문을 판공(判功)이라 불렀고 가을에 하는 것을 '가을 판공' 으 로, 봄

공소에서 미사 대신 거행되는 전례. 공소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주일이나 축일에 그 지역 신자들 이 모여 공소 회장을 중심으로 이 예절을 거행한다. 종 래에는 이를 '공소를 본다' 거나 '첨례(瞻禮)를 바친다'고 표현하였다. 한국 교회에서는 초기 교회 때부터 공소 중심으로 전 례가 행하여져 왔으므로 공소 예절이 매우 중시되었으 며, 1864년 4권
공소 신자들이 공소 유지를 위해 내던 헌금. 한국 교회 초기부터 시행되어 온 제도로 본당이 확산되어 가면 서 헌금 제도로 정착되었다. 초기의 공소전은 봄 · 가을 판공(判功) 때나 필요할 경우 부정기적으로 봉헌되었으 며, 물품의 경우에는 당시의 화폐로 계산되는 것이 통례 였다. 신자들은 이를 정성껏 바쳐야 했으며, 이렇게 모 아진 공소전은 공소 회장 또는
성체께 대한 존경과 영성체를 위한 마음의 준비로 적어도 영성체 한 시간 전부터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 공 복재(空腹齋)라고도 한다. 가톨릭 교회 안에는 3세기까 지 공심재가 알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는 아가페(agape)라고 하는 공동 식사 후에 영성체를 하였 다. 그러나 4세기에 접어들면서 영성체 전에 음식물을 금하는 관습이 거의 보편화되었다

신앙, 윤리, 규범 등 종교적인 문제를 다루는 주교들 의 회합. 콘칠리움(Concilinum)이란 용어는 교회 밖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주교 들의 회합, 그러한 회합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지칭한다. 시노두스(συνοδς)도 세계 공의회(Concilium oecumeni-cum) 를 말할 때 함께 사용된다. 〔종 류〕 교회사에서

공의회의 결정에 교황이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 14세기에 형성되어 15세기에 이른바 개혁 공의회에서 적용 · 실천되기에 이른다. 공의회 우위설은 일반적으로 14세기, 파도바의 마르실리오(Masilius da Padova, +1342) 와 오캄(William von Ockham, +1349)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기본 사상은 이미 12~13

〔목적과 문제 제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한국 가톨릭 교회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이 항 목의 목적이다. 한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 날 무렵부터 양적인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 고, 교회의 모습도 전에 비하여 현저하게 변하였다. 교회 의 성장이 공의회의 결과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워도, 한 국 교회 모습의 변화는 상당한

기원전 6세기 고대 중국에서 최초로 독자적 사고 체계 를 형성하여 그 후 중국 문화의 뼈대를 이루어 온 유가 (儒家) 사상의 맥을 시작한 인물. 우리 나라에도 삼국 시 대에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論語)가 전래되어 기본 교 과서로 정착되면서 공자의 가르침은 한국인들의 인간관 과 사회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공자의 생애와 사상 및 제자들에 대해서 가장 믿을

'notarius' 란 말은 '문자' 혹은 '기호' 라는 라틴어 nota' 에서 유래되었는데 문서를 기록, 작성하는 서기로 서의 의미와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그 문서가 공신력을 지니게 되는 공증관으로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현 행 교회법에서 공증관은 모든 기록 문서, 재판 기록, 특 정 안건 및 업무의 기록 문서 등에 그 서명이 공신력을 갖게 되는 사람을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인들의 축일이 매우 드물었 기 때문에 각 축일은 고유한 전례(기도문 등) 형태들을 가 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인 축일들이 점차 증가하면서 제 각기 고유한 기도 형태들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 고 이처럼 고유 기도 양식들을 갖지 않는 성인 그룹을 위한 미사를 성인 공통 미사라 한다. 처음에는 순교자들, 증거자들, 동정녀들을 위한 공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강서구 공항동 691 소 재. 1966년 12월 14일 당산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 으며, 주보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관할 구역은 공 항동과 방화1 · 2동 지역. 〔교 세〕 1973년 939명, 1978 년 1,874명, 1982년 2,683명, 1987년 5,747명, 1989 년 6,136명, 1993년 5,7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