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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안동교구장. 주교. 세례명은 이냐시오. 1941년 3월 19일 경북 성주군 월항면 장산리(星州郡 月恒面 長 山里)에서 박성빈(보니파시오)과 배옥화(안나) 사이의 6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나 1959년 성주농업고등학교를 거쳐 가톨릭대학에 입학하였으며, 1970년 3월 동 대학 원에 진학하여 이듬해 9월 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그 해 10월 23일

서울대교구 신부. 한국 가톨릭 노동 청 년회(Jeunesse Ouvriere Chretienne, J.O.C.) 초 대 지도 신부. 세례명 은 프란치스코. 1925 년 5월 15일 경기도 개성(開城)에서 태어 나 1943년 경복중학 교를 졸업하고, 경도 연수학관(京都研修學 館), 개성 송도초등학 교 교사, 만주 만몽주 식회사(滿州滿蒙株式 會社) 사원 등을

순교자들의 행적 증언자. 세례명은 베드로. 1830년 서울 남문 밖의 전생서(典牲署, 현 용산구 厚岩洞)에서 순 교자 박(朴) 바오로와 김(金) 아가다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으면서 성장하였다. 부 친 박 바오로는 일찍이 성 앵베르(Imbet, 范世亨) 주교, 모방(Maubant, 羅伯多祿) 신부, 샤스탕(Chastan, 鄭牙各 伯)

여성 정치가. 제2대 및 4~7대 국회 의원. 세례명은 요안나. 본명은 명련(命蓮). 1898년 경남 동래(東萊)에 서 박재형(朴在衡)과 김춘열(金春烈)의 무남독녀로 태 어나 10세 때 장로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1917년 동 래 일신(日新)여학교를 졸업한 후 마산 의신(義信)여학 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3 · 1 운동이 일어나자 부산 지역 의 연락 ·

성인.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세례 명은 안나. 축일은 9월 20일. 1783년 서울 한강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으며, 어머니와 함께 직접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기도문이나 교리 내용을 정확 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 게 해달라는 기도를 매일 바칠 정도로 신앙이 깊었던 박 아기는 "나는 천주를 내

인간의 존엄을 최고로 여기고 인종적 편견과 국가적 이기심 없이 인류 전체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전 인류가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 '사해 동포주의' (四海同胞主義)라고도 한다. 〔어의와 개념〕 박애라는 말은 인류애(人類愛)를 뜻하는 그리스어 '필란트로피아' (Φιλανθρωπία)에서 유래하였다. 이 용어는 17세기경부터 다양한 윤리 · 종교적 체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의 순교자. 회장. 세례명은 사도 요한. 일명 내호(來浩). 황해도 신천(信川)의 양반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충실하게 교육을 받았기에 천주교 교리를 들은 후 얼마 안되어 세례를 받았으며, 주위의 많은 외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켰다. 교우들과 함께 강당을 마련한 후 성사를 받기 위해 사제를 영접하였으나, 이를 시
평양교구 신부. 북한 공산 정권의 희생자. 세례명은 디모테오. 1912년 평원군 공덕면 홍운리에서 태어나 1933년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 현 동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해 봄 평양 지목구장 모리스(J. Morris, 睦怡世) 몬시뇰의 교구 성직자 양성 정책에 따라 한국 교회 최초로 동료 신학생 김필현(金泌現, 루도비코)과 함께 로마 우르바노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본관은 고령 (高靈). 1884년 강원도에서 박창배와 최 아나타시아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나 원주(현園洞) 본당 소속으로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 9월 22일 졸업과 동시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즉시 충남 구합덕(舊合德) 본당에 파견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본국으로 소환된 크렘프(Krempf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일명 흥원(興元) 1909년 경기도 광주군 도척면 상림리(廣州郡 都尺面 祥林里)에서 박병희(朴炳熙, 요한)의 아들로 태어나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수료한 후에 1936년 3월 28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황해도 장연(長淵)본당 보좌로 임명되어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한 박원영 신부는 2년 뒤인 1938년 5월 황해도 신천(信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안드레아. 아명은 규옥(圭玉). 본관은 순천(順川). 1897년 8월 9일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豊水院)에서 박덕필(朴德弼)과 조한강(曹漢江)의 외아들로 태어나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으며, 일찍부터 풍수원 본당 주임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신부에게 수학하면서 복사로 활동하였다. 정규하 신부의 영향

대구대교구 신부. 대구대교구 부주교. 세례명은 요한. 1899년 5월 7일 경북 경주읍 성동리에서 태어나 1914년 10월 3일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26년 5월 29일 사제로 서품된 후 곧바로 전남 나주군 노안면 양천리의 계량(桂良, 현 노안)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1927년 12월 25일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 바오로. 1891년 7월 27일 경북 상주에서 박상만(朴相萬, 필립보)과 강 마리아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8~9세 무렵 부모를 따라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 해곡리(海谷里) 별미(別味)에 정착하였다. 그의 집안은 1827년 정해박해(丁亥迫害) 때 조모 이 데레사가 충주(忠州) 원당마루라는 곳에 은신해 있다가 체포되어 순교했을 정도

주교. 초대 제주교구장. 제6대 전주교구장. 제3대 마산교구장. 세례명은 미카엘. 1926년 12월 18일 평안남도 평원군 동송면 청용리에서 박윤도(스테파노)와 한경옥(안나) 사이의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 1944년 12월 평남 승인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2년 반 가량 초등학교 교사(1945. 4~1947. 12)로 재직하였다. 이때 사제가 될것을 결심

조선 후기의 실학자요 문인. 본관은 밀양(密陽). 초명은 제운(齊雲). 자는 재선(在先) · 차수(次修) · 수기(修其). 호는 초정(楚亭) · 정유(貞蕤) · 위항도인(葦杭道人). 북학파(北學派)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의 선진 문물과 북경에 널리 전파되어 있던 서학(西學)을 이해하고 그 수용을 적극 주장하였으며,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바탕을 두고 조선의 정

성인.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의 순교자. 성녀 고순이(高順伊, 바르바라)의 남편. 일명 이선.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축일은 9월 20일. 1793년 서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약방에서 거간 일을 하며 곤궁하게 생활하였으나 모친과 함께 언제나 교리를 실천하는 데 열심하였던 박종원은, 겸손하고 온화한 성격에 교리 지식이 깊었

마산교구 신부. 세례명은 안토니오. 본관은 밀양(密陽) 부산교구 박문선(朴文善, 야고보) 신부의 동생. 1935년 2월 3일 경남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524번지에서 박기수(루가)와 최순애(데레사)의 7남 3녀 중 4남으로 태어나 1950년 언양초등학교, 1954년 거제제일중학교, 1957년 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여 1965년 12월

교육자. 남대문상업학교(南大門商業學校, 현 동성중고등학교) 2대 교장. 초대 성모병원 원장 박병래(朴秉來, 요셉)의 부친. 세례명은 요한. 1884년 충남 논산군 구자곡면(論山郡 九子谷面) 두각리에서 태어나 13세 때 상경한 뒤 토지 조사국(土地調査局)에 다니면서 일본어를 공부한 박준호는, 만학으로 양정학교(養正學校)와 경성전수학교(京城專修學校)를 졸업하였

조선 후기의 실학자요 문인.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 연상(煙湘) · 열상외사(例上外史).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역임한 필균(弼均)의 손. 북학파(北學派)의 선구자로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바탕을 두고 조선의 정치 · 사회 · 경제 개혁을 강조하였으며, 청나라의 선진 문물과 서학(西學)을 이해하고 그
수원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한. 1921년 3월 16일 경기도 시흥군 의왕읍 학의리(鶴儀里)에서 박길선(朴吉善, 요셉)과 이순이(李順伊, 막달레나)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과천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서울 동성 상업 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乙組)와 덕원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성신대학(聖神大學)에 편입하였으며, 1947년 10월 28일 졸업과 동시에 사제로

